
난 미디움으로 구운다음 잔열에 조금씩 익혀먹는게 좋아
오늘 동네 고깃집에서 레어로 주문했는데, 불판 위에 올려진 순간 뭔가 애매하게 익은 느낌이 들었어.
레어라면 중심이 핑크빛으로 남아야 하는데 이건 끝까지 불투명하게 익은 부분이 있었거든.
주문은 확실히 레어였고, 잔열에 맡겨 마무리하자는 안내를 들은 건지 뭔가 의도된 듯한 인상도 들었지.
그때부터 이게 단순 실수일까, 아예 다른 의도가 숨어 있나 싶어졌다.
옆 테이블에서도 비슷한 논조의 얘기가 들려와서 더 헷갈렸어.
누군가는 '레어파의 자존심이 상한다'고 말했는데, 듣고 보니 분위기가 조금 뭉글뭉글해진 느낌이었거든.
주방 쪽의 작은 타이밍 차이나, 고기의 두께 차이가 눈에 띄게 다르게 느껴져서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기 어려웠지.
불판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분위기도 예전보다 더 조용하고 계산대 옆의 표정도 뭔가 남다르게 냄새가 났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다 눈에 보이는 작은 단서일 뿐, 확정은 아무도 못 내리고 있어.
미디움과 레어 사이에서 누구는 취향을 존중받아야 한다고 하고 누구는 맛의 균형이 깨진다며 말들이 오가니, 우리도 어쩌면 부심과 취향 사이에서 친구들을 나눌 수밖에 없지.
결론 없이 흘러가는 대화 속에서, 누가 잘못했는지보다 우리가 뭘 기대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게 돼.
다음에 또 가게 되면 같은 레어 주문이 돌아올지 궁금하고, 그때도 불판에서 무언가 바뀐 느낌이 들지 않길 바랄 뿐이야.
소고기의 매력은 여전히 크고, 레어에 대한 부심이 작은 오해를 낳지 않길 바라는 마음은 남아 있어.
그때까지도 잔열의 미세한 차이와 불판의 온도 변화가 우리 사이의 작은 수다를 떠받치는 걸까 하는 생각이 남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