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가 법정에서 일본이 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안창호 선생이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심문을 받던 중 한 말이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는 사람이 일본의 실력을 인정하는 것도 모자라, 일본이 망하지 말고 좋은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보통은 상대가 무너지기를 바라는 장면을 떠올리기 쉬운데 방향이 완전히 달랐다.
그렇다고 독립 의지가 약했던 것도 아니다.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일까지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라며, 몸이 없어질 때까지 생각이 바뀌지 않을 거라고 했다. 독립이 가능하냐는 질문에도 망설임 없이 반드시 된다고 답했다.
더 인상적인 건 일본을 비판하는 방식이었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인 건 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무력만 강한 나라가 아니라 도덕력도 갖춘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건 일본을 좋게 봐준 말이 아니라, 힘이 큰 나라일수록 이웃을 짓밟지 말라는 요구에 가깝다.
특히 원한을 품은 사람들을 억지로 국민으로 붙잡아두는 것보다, 우정 있는 이웃으로 두는 편이 일본에도 이롭다는 대목에서 잠깐 멈췄다. 독립을 일본에 대한 복수로만 설명하지 않고 동양의 평화와 일본의 복리까지 연결하고 있다. 내 생각엔 이 사람은 일본의 패배보다 일본의 변화가 더 나은 결말이라고 봤던 것 같다. 그런데 그 말을 일본의 심문실에서 끝까지 밀어붙였다는 게 아직도 묘하게 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