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살 여공무원이 결정사에서 내건 조건을 봤는데, 첫 줄부터 키 170cm 이상에 의사·한의사·대기업 연봉 1억 이상이다. 나이는 동갑부터 위로 6살까지. 수도권 거주, 대학 졸업에 의학 관련 학력, 재혼은 안 되고 종교는 기독교가 아니어야 한다고 적혀 있다. 조건표만 보면 사람을 만나는 게 아니라 채용 공고를 보는 기분이다.
더 눈에 들어온 건 본인에 대한 설명이다. 꽤 잘나가는 공무원이니까 이 정도는 되지 않겠냐는 식으로 적혀 있다. 그런데 결정사 쪽 결과는 가입 불가였던 모양이다. 여기서 좀 웃겼다. 본인은 자신의 직업을 시장에서 꽤 강한 카드로 계산했는데, 상대 조건을 붙이는 순간 그 카드의 가치가 본인이 생각한 만큼 올라가지 않았던 것 같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안정적인 건 맞다. 그래도 의사나 한의사, 연봉 1억 이상 대기업 직장인과 한 묶음으로 맞바꿀 수 있는지는 전혀 다른 문제다. 특히 상대에게는 키, 체형, 인상, 나이, 학력, 지역, 종교, 결혼 이력까지 한꺼번에 요구하면서 본인 쪽 조건은 공무원이라는 한 줄로 설명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이건 좀 무리한 계산 아닌가 싶다.
물론 본인이 어떤 사람을 원하는지는 자유다. 따뜻하고 배려심 있고 책임감 있는 성격, 건강 관리와 여행을 중시하는 가치관까지 적은 건 이해한다. 그런데 직업과 소득은 아주 구체적으로 제한해놓고, 정작 본인의 조건은 꽤 잘나가는 공무원이라는 표현으로 뭉뚱그렸다. 상대 입장에서는 그 꽤가 어느 정도인지 알 방법도 없다.
의학 관련 학력이라는 문구도 애매하다. 의사나 한의사를 원하는 건지, 관련 직종이면 되는 건지 읽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일 듯하다. 그런데 앞에 직업과 연봉 조건이 이미 너무 세서 애매함이 오히려 더 웃기게 느껴진다. 결정사에서 가입 불가 판정을 받은 이유가 조건이 많아서인지, 그 조건에 비해 본인 설명이 부족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공무원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조건이 상쇄되지는 않는다는 건 알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