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 사람이 부산을 친절하다고 느낀 적이 없다가 서울에 가서 상처받고 돌아왔다는 대목에서 멈췄다. 부산 여행객들은 바다 보이고, 음식 맛있고, 길 물어보면 말투는 거칠어도 somehow 챙겨주는 분위기가 좋다고 하는데 정작 부산에서 태어나 산 사람은 그걸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던 모양이다. 익숙하면 원래 그렇다. 태종대가 남들한테는 관광지인데 부산 사람한테는 그냥 동네 뒷산인 것처럼.
특히 부산에서 길을 물으면 설명이 끝날 때까지 주변 사람에게 전화까지 해가며 어떻게든 보내주려는 장면이 웃겼다. 말은 짧고 세게 들리는데 행동은 꽤 집요하게 친절한 식이다. 뭐 한다고 그런 걸 줍니까, 그냥 가져가세요 같은 말을 짧게 줄여버리는 것도 부산식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이건 좀 이해된다. 말투만 들으면 퉁명스러운데 실제로는 손에 뭔가 쥐여주는 사람들.
반대로 서울에서는 낯선 사람이 다가오는 순간부터 경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길을 물어보려면 저기…로 시작하지 말고 용건부터 바로 말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왔다. 사이비나 구걸이 아니라는 걸 먼저 증명해야 한다는 말은 웃기면서도 꽤 씁쓸했다. 사람을 많이 만나는 도시일수록 초면의 친절도 어느 정도 방어적으로 바뀌는 것 같다. 표정이 부드럽고 서비스가 싹싹해도 그게 진심인지 아닌지는 또 다른 문제고.
그렇다고 부산 사람들이 다 따뜻하고 서울 사람들은 다 삭막하다는 식으로 가면 너무 쉽게 끝난다. 부산도 친절하다기보다 친근한 쪽에 가깝다는 말이 더 맞아 보인다. 말이 거칠고, 운전은 부산 사람도 긴장하고, 가끔은 영화에서 튀어나온 듯한 이상한 사람도 있다. 그래도 말할 시간에 움직이는 사람이 많다는 느낌은 확실히 흥미로웠다.
결국 부산의 바다와 동네 풍경을 제일 모르는 사람은 부산에서 오래 산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매일 보던 항구와 산과 바다가 남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되는데, 본인에게는 출퇴근길 배경일 뿐이다. 나도 내가 사는 동네의 좋은 점을 누가 칭찬하면 속으로 별거 아닌데 싶을 때가 있다. 그런데 타지에 가서 상처 한 번 받고 나면, 그 별거 아닌 말투와 사람들의 오지랖이 갑자기 그리워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